20 Oct 2026 · #공포단편소설 #디스토피아
001: 수면이 먼저 본다
다리 아래 물은 검었다.
낮인데도 그늘이 깊어서, 수면은 거의 검은 유리처럼 보였다. 가끔 바람이 스치면 물결이 일고, 그때마다 저 위 어딘가에서 쏟아지는 햇빛이 길게 깨져 흩어졌다. 반짝이는 조각들이 수면 위를 미끄러지며, 마치 무언가가 아래에서 숨을 고르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난간에 기대 서 있었다.
휴대전화 화면을 켜고 끄기를 반복했지만, 신호는 처음부터 없었다. 여기까지 온 이유가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는 점점 흐려졌다. 단지 “저 물이 이상하다”는 말을 듣고 온 것이었다. 누구의 말이었는지는 이미 기억나지 않았다.
수면을 오래 내려다보다가, 그는 깨달았다.
빛이 반사되는 위치가 이상했다. 다리 아래 그늘인데, 햇빛이 닿을 리 없는 각도에서 반짝임이 시작되고 있었다. 물결이 잠잠해질 때마다, 그 반짝임은 한 점씩 줄어들었다. 그리고 줄어든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냥 검은 물뿐이었다.
그는 난간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콘크리트 벽에 붙은 흰 가림막들이 바람에 미세하게 흔들렸다. 가림막 너머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는 자꾸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수면의 반짝임이 가림막의 그림자 쪽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여기 누구 있어?”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대답은 없었다.
대신 수면이 한 번 크게 일렁였다. 반짝임이 일제히 꺼졌다가, 다시 켜졌다. 이번엔 그의 발치 바로 아래, 난간 바깥쪽 물 속에서였다.
그는 난간을 붙잡았다.
손이 닿은 철이 예상보다 차가웠다. 아니, 차가웠다기보다는 이미 오래전부터 만져진 것처럼, 온기가 빠져 있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수면 바로 아래에서, 그의 얼굴이 비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얼굴은 난간 위에 있는 자신의 얼굴을 정확히 따라가지 않았다. 약간 늦게 움직였다. 입을 벌릴 때마다, 수면 아래의 입이 먼저 벌어졌다. 그리고 그 입이, 아주 작게 웃었다.
그는 뒤로 물러섰다.
발밑이 미끄러졌다. 콘크리트 바닥이 젖어 있었다. 언제부터 젖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는 다시 수면을 내려다보았다. 이제 반짝임은 없었다. 검은 물만 고요했다.
그런데 그 검은 물 속에, 그의 손이 하나 더 있었다.
난간을 붙잡고 있지 않은 쪽 손이, 이미 물 속에 잠겨 있었다. 그리고 그 손은, 천천히 난간을 붙잡고 있는 자신의 손을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
그는 비명을 지르려 했다.
입이 벌어졌다. 하지만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대신 수면 아래의 입이, 먼저 열렸다.